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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찰노트

경춘선 숲길 끝에서, 아이가 먼저 자리를 찾은 날

오늘의 한 줄 : 추운 오후였지만, 아이와 함께한 시간은 오래 따뜻했다.

경춘선 숲길 끝에서, 아이가 먼저 자리를 찾은 날

 

어제는 아이와 함께 경춘station 도서관에 다녀왔다.

경춘선 숲길을 따라 걷다 보면 나오는 작은 도서관이다.

날은 꽤 추웠고, 일부러 나서지 않았다면 집에 머물렀을 법한 오후였다.

 

숲길을 걷는 동안 아이는 앞서기도, 멈추기도 했다.

낙엽을 밟아 소리를 내보고, 공원 한쪽에 놓인 운동기구에 올라가 몸을 움직였다.

 

숲길 사이에 깔린 철도길 선로 위를 걷고 싶어 아이는 엄마의 손을 잡고 중심을 잡으며 천천히 나아갔다.

 

추위를 피하려고 도서관에 들어갔고, 추운 숲길을 그렇게 걷는 시간 동안 몸보다 마음이 먼저 풀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관찰 1) 도서관에 들어가기 전의 아이

도서관에 들어가기 전, 아이는 이미 충분히 움직인 상태였다.
그래서인지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더 들뜨기보다는 오히려 차분해 보였다.
밖에서 흘려보낸 시간이 아이를 먼저 정리해 준 것처럼 느껴졌다.

 

관찰 2) 아이가 고른 자리

아이를 따라 안으로 들어가니, 지금은 운행되지 않은 기차 안, 유리창 너머로 책이 보이는 작은 공간이 있었다.
아이 스스로 의자를 골라 앉았고, 책을 세워 두고 사진을 찍어 달라고 했다.
그 모습이 마치 ‘여기에 앉는 것을 승인해 달라는 것’처럼 보여서 잠시 웃음이 났다.

 

관찰 3) 함께 읽는다는 것

우리는 같은 책을 읽지는 않았다. 아이 옆에 앉아 각자 책을 넘겼고, 가끔 아이가 고개를 들어 책장을 가리켰다.
그 정도의 공유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듯, 아이는 편안해 보였다. 

 

내가 집어 든 책은 『내 일을 위한 기록』이라는 제목의 책이었다. 아이를 기다리며 읽기엔, 지금의 나에게 어울리는 책처럼 느껴졌다. 아이는 이 책 저책 꺼냈다가 훑어보며 다시 제자리에 갖다 놓기도 했다. 

 

정리

어제의 도서관은 공부를 하러 간 곳이라기보다, 아이와 함께 하루의 속도를 잠시 늦춘 장소에 가까웠다. 추운 날이었지만, 그 시간만큼은 유난히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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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관찰 요약

  • 숲길을 걷는 시간이 도서관보다 먼저 아이를 정리해주었다.
  • 아이는 스스로 자리를 고르고, 그 공간에 자연스럽게 머물렀다.
  • 함께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한 오후였다.

[덧붙인 생각]

아이와 보낸 시간이 꼭 특별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를 갔는지, 무엇을 했는지보다 그 시간 동안 아이가 얼마나 편안했는지가 더 오래 남는 경우도 있다는 걸 어제는 느꼈다.

함께 있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하루의 일부는 충분히 채워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