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한 줄 : 아무도 원하지 않았지만, 내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하루를 만들고 있었다.

오늘 아무도 잡채를 해달라고 하지 않았다.
냉장고에 남아 있던 채소들을 꺼내 놓고, 당면을 불리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요리는 늘 그렇듯, 요청 없이 시작된다.
잡채를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나는 가끔 이렇게 혼자 재료들을 손질한다.
가족을 위한 식사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내가 익숙해하는 리듬에 더 가깝다.
당면이 투명해질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 채소를 하나씩 볶아내는 순서, 양념을 너무 세지 않게 맞추는 손의 감각.
이 과정에서는 서두르지 않는 내가 있다. 나는 이 채소들이 볶아지면서 내는 향들이 좋다.
관찰 1) 부탁받지 않은 메뉴
이상하게도 잡채는 “오늘 뭐 먹고 싶어?”라는 질문과는 잘 연결되지 않는다. 해달라는 말이 없어도, 그냥 만들게 되는 음식이다.
그건 어쩌면 누군가를 위해서라기보다 나 자신을 위한 선택일지도 모른다.
관찰 2) 좋아하는 것에는 설명이 없다
채소 하나만으로는 반찬이 되지 않지만, 정갈하게 썰린 채소들이 하나둘 볶아지면 색과 향이 모인다.
거기에 있어도 없어도 괜찮을 것 같은 버섯과 고기가 더해지고, 마지막에 양념된 당면이 섞이면 근사한 한 그릇이 된다.
이 음식이 나는 좋다. 왜 이걸 만들고 있는지 묻지 않았다. 좋아하니까, 그냥 하게 됐다는 이유면 충분했다.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행동 앞에서는 마음이 조금 느슨해진다. 오늘은 그 느슨함이 유난히 편안했다.
관찰 3) 가족과 나 사이의 거리
완성된 잡채를 식탁에 올려두고 나서야 이 음식이 결국은 가족의 몫이 된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그 과정의 대부분은 나 혼자 조용히 지나왔다. 그게 싫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시간이 있어서 식탁에 앉는 순간이 평소보다 조금 더 편안하게 느껴졌다.
정리
오늘 만든 잡채는 누군가의 요청으로 시작된 요리가 아니었다. 좋아해서, 익숙해서, 그냥 그렇게 흘러간 선택이었다.
가끔은 설명할 필요 없는 행동 하나쯤이 하루를 지탱해 주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의 관찰 요약
- 오늘은 아무도 부탁하지 않았지만 잡채를 만들고 있었다.
- 이 음식은 가족을 위한 선택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내가 좋아하는 리듬에 가까웠다.
- 설명 없이 반복하는 행동 하나가 하루를 편안하게 지탱해주고 있었다.
[덧붙인 생각]
잡채라는 음식을 보면, 가끔 조선시대의 탕평채가 떠오른다.
서로 다른 색과 재료가 하나로 섞이며 조화를 이룬다는 의미로 탕평책을 떠올리게 하는 음식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런 생각 때문인지, 잡채를 만들고 있으면 가족이나 결혼도 비슷하다는 느낌이 든다.
서로 다른 색을 가진 사람들이 만나 어울리는 방법을 조금씩 배워가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말이다.
조금은 엉뚱한 생각이지만, 오늘은 그 연결이 유난히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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