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관찰노트

뽑기 운 없는 날에 생긴 기다림

오늘의 한 줄 : 필요한 물건이 제때 작동하지 않는 날은, 하루의 리듬도 함께 멈춘다.

뽑기 운 없는 날에 생긴 기다림

 

며칠 전 쿠팡에서 가습기를 하나 주문했다.
계절이 바뀌고 공기가 건조해져서, 더 미루지 않고 바로 써야겠다는 마음이었다.
로켓배송으로 도착한 상자를 열 때까지만 해도, 그날 안에 해결될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가습기는 작동하지 않았다. 사용설명서를 꼼꼼히 읽고 하라는 대로 세팅한 후 전원을 켜고 버튼을 눌러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 몇 번을 다시 확인했지만 상황은 같았다.

관찰 1) 첫 번째 교환

고객센터에 연락했고, 교환이 진행됐다. 불편함은 있었지만 그 정도는 충분히 감수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다음에 오는 제품은 당연히 작동할 거라는 기대도 있었다. 다음 날, 교환 상품은 바로 회수되었고 새 가습기가 도착했다.
이번에는 망설이지 않고 바로 전원을 켰다. 하지만 이번에도 작동하지 않았다.

 

관찰 2) 두 번째 고장 앞에서

두 번째로 작동하지 않는 가습기를 앞에 두고, 실망보다 먼저 떠오른 건 ‘이런 날도 있나 보다’라는 생각이었다.
필요해서 산 물건을 연속으로 쓰지 못하는 날이 생길 줄은 몰랐다.

 

사람들이 말하는 ‘뽑기 운’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일상 가까운 곳에도 붙어 있을 수 있다는 게 조금 씁쓸하게 느껴졌다.

문득 이 가습기를 오늘 꼭 써야 한다고 생각했던 내 계획이 아무 의미 없어졌다는 기분도 들었다.
필요했던 건 물건이 아니라, 그 물건이 만들어줄 평범한 하루였다는 생각이 스쳤다.

 

관찰 3) 다시 교환을 기다리며

두 번째 교환을 한다는 사실에 묘한 미안함이 함께 따라왔다. 내가 잘못한 일은 아니었는데, 두 번의 교환을 요청하고 있는 상황 자체가 나를 괜히 조심스럽게 만들었다. 이번에도 혹시 작동하지 않으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들어, 괜히 한 번 더 망설이게 됐다. 고객센터의 응대는 친절했고, 해결은 진행 중이었다.

 

문제는 해결되고 있었지만, 가습기를 쓰지 못한 하루들은 그대로 지나가고 있었다.

 

필요했던 물건은 아직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었고, 나는 그 사이를 기다리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택배 조회 화면을 다시 열어보지도 않았는데, 이미 마음은 다음 상자를 열어보는 장면으로 가 있었다.
이번에는 제발 정상적으로 작동하길 바라는 마음이 생각보다 더 오래 남아 있었다.

 

정리

고장이 난 건 가습기였지만, 멈춰 있었던 건 하루의 리듬에 가까웠다.
교환은 해결이었지만, 기다리는 시간까지 대신해주지는 않았다.

이번에 오는 가습기는 정말 작동했으면 좋겠다는 마음만 남겼다.
그 마음으로 다시 한번 상자를 열게 될 것 같다.

 

더보기

오늘의 관찰 요약

  • 필요해서 산 물건이 연속으로 작동하지 않는 날이 있었다.
  • 교환은 가능했지만, 기다리는 시간은 그대로 남았다.
  • 오늘은 가습기보다 ‘운’이라는 단어가 더 오래 머물렀다.

[덧붙인 생각]

 

우리는 물건을 사는 게 아니라, 그 물건이 제때 작동해 줄 일상을 함께 기대하는 건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