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한 줄 : 멀리 가지 않았는데, 하루는 충분히 멀리 다녀온 기분이었다.

오늘은 가족 모두 집 앞에 있는 대학교 안에 마련된 씽씽 눈썰매장에 다녀왔다. 크리스마스라서 특별한 계획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그저 집 근처에서 잠깐 바람이나 쐬자는 마음에 나섰을 뿐이었다.
관찰 1) 출발점에서의 두근거림
90미터 슬로프 꼭대기 위, 타이어에 앉아 출발을 기다렸다. 나는 중간쯤 되는 위치였고, 생각보다 경사는 가팔라 보였다.
출발 신호가 나자 타이어는 빠르게 미끄러지기 시작했고, 내려오는 동안 타이어가 빙글 돌며 앞사람과 부딪히기도 했다.
끝 지점의 벽에 닿았을 때야 멈췄다. 아이도 괜찮은 척하며 내려왔지만, 사실은 조금 무서웠다고 나중에 말해주었다.
두 번째로 탈 때는 “이제 적응된 것 같아”라고 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아이도 나도 각자의 속도로 그 감각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관찰 2) 기다림과 감각
줄은 길었고, 처음 탈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이 꽤 있었다. 그래도 오랜만에 느껴보는 스릴 덕분에 기다림이 지루하게만 느껴지지는 않았다.
평소에는 차분한 일상 속에서 조심스럽게만 움직이며 사는 편인데, 가끔 이렇게 몸이 먼저 반응하는 감각도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는 걸 새삼 느꼈다.
관찰 3) 손에 잡히지 않던 것들
썰매 다음에는 빙어잡이 체험을 했다. 빙어는 생각보다 빨랐고, 뜰채로는 쉽게 잡히지 않았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몇 마리를 건져 올린 뒤 튀김 코너로 갔다. 갓 튀겨 나온 빙어튀김은 올해 먹은 음식 중 손에 꼽을 만큼 맛있었다. 추위 속에서 손을 녹이며 먹어서였는지, 그 맛이 더 또렷하게 남았다.
관찰 4) 돌아오는 길의 선택
튀김을 다 먹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날이 갑자기 더 추워졌다.
그래도 바로 집으로 가지 않고 서오릉피자에 들러 피자를 먹었다. 평소에는 배달이나 포장으로 먹던 피자였는데, 매장에서 바로 나온 피자는 확실히 달랐다. 특별한 메뉴가 아니었는데도 오늘은 유난히 맛있게 느껴졌다.
정리
오늘은 집 근처에서 썰매를 타고, 빙어를 잡고, 외식을 했을 뿐이다. 멀리 가지도 않았고, 큰 소비도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예전에 대형마트를 돌며 선물을 사고 이것저것 사던 날보다 오늘이 더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았다.
가까운 곳에서도, 적당한 감각과 함께라면 하루는 충분히 특별해질 수 있다는 걸 오늘은 몸으로 느낀 하루였다.
오늘의 관찰 요약
- 짧은 스릴과 기다림이 하루의 감각을 깨웠다.
- 손에 잡히지 않던 빙어와, 더 또렷했던 맛이 남았다.
- 멀리 가지 않아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크리스마스였다.
[덧붙인 생각]
행복한 하루가 꼭 많은 소비나 큰 이동으로 만들어지는 건 아닌 것 같다.
오늘은 몸이 먼저 기억한 감각 몇 가지가 하루의 밀도를 바꿔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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